

발리는 인도를 제외하고 힌두교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나는 발리에 도착한 후에나 알게 되었고 그만큼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도착해서 새하얀 도화지 같았던 내 시야에 가장 먼저 포착된 것은 길가에 놓여져있는 ‘차낭사리 (Canang Sari)’였다. 코코넛나무 잎이나 바나나 잎으로 만든 작은 그릇에 꽃, 과자나 사탕 가끔은 밥풀, 담배, 동전 등을 담아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다.
발리어로 Chatik (아름다운) + nang (목적) + sari (본질) 이 합쳐져서 “a beautiful purpose (아름다운 목적)” or the “essence of a sincere offering (진심 어린 공물의 본질)” 이라는 뜻을 가진 이 차낭사리는 발리 어디서나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볼 수 있다. 흰 꽃은 순수, 붉은 꽃은 힘, 노란 꽃은 번영, 초록 잎은 화합을 상징하며, 피어오르는 향은 기도가 신에게 닿게 하는 영적인 세계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신에게 바쳐진 후 올려진 음식들은 주로 새나, 원숭이, 개 등 그 동네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먹는다.



발리 사람들은 하루 몇 번씩 정성을 들여 이 차낭사리를 바친다. 대충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저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듯하다. 영적인 것, 그리고 사람이 반복적으로 행하는 의식(ritual)에 대해 생각이 짧았던 발리 여행 초반기에는 그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론 의문이 들었다. 왜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그 무언가를 위해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는 것일까.


어떤 기도를 할까. 발리 사람들은 준비해 온 제물 위에 향을 얹고, 성수를 세 번 뿌린 뒤 눈을 감고 기도를 한다. 현지인에게 직접 들은 설명으로는, 이 때 하는 기도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거나 ‘시험에 합격하게 해달라’는 그런 세속적인 내용이 아니라 마음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짓게 해달라고 빈다고 한다.
차낭사리를 바치는 행위 자체는 힌두교의 수행법 중 하나인 박티요가 (Bhakti Yoga)이다. 박티요가는 신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복종, 헌신을 통해 영적 깨달음에 도달하려는 수행법인데, 이 관점에서 기도 내용을 되새겨보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신의 소관에 맡긴 뒤 찾아오는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바라는 발리인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는 스스로의 인생을 위한 계획이나 노력을 포기하라는 극단적인 허무주의가 아니다. 내 뜻대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자기중심적 욕망에서 벗어날 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아침 명상을 하러 가는 길에 가끔 마주쳤던 메이 할머니. 매일 아침 7시, 항상 같은 장소에서 이렇게 차낭사리 의식을 하신다.)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이 곳은 일년에 벼농사가 두 세 번까지 가능하고 길가에 예쁜 꽃들이 흐드러지게 떨어져 있을 정도로 생명력이 넘쳐나는 곳이다. 넘치는 맑은 지하수와 길가에 주렁주렁 열려있는 과일열매들. 사람들은 자연이 베푸는 이 풍족함을 다시 자연에게 조금 떼어 돌려준다. 나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내가 얻은 것은 온전히 내 것만이 아니기에 주변의 생명들과도 나누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해된다.
효율 그리고 성과로 사람을 판단하며 물질적 풍요를 위해 앞다퉈 경쟁하는 사회에 익숙했던 내가 이런 사고방식에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내가 살아가는 터전에 다른 생명들도 함께 존재함을 인지하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조금은 돌아가도, 조금은 불편해도 괜찮다는 생각.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몸으로, 마음으로 배운 것은 발리에서였다. 그리고 뉴욕으로 돌아오자마자 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으로 설계된 이 도시의 편리함에 젖어들어서 발리에서 배운 그 마음의 여유를 금세 잊어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발리인들은 유난히 순수하고 선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만난 많은 발리 사람들이 그랬다. 조금 번거로운 상황이 발생해도 미소를 잃지 않고 도와주었다. 단순히 발달한 관광업에서 나오는 친절함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어쩌면 박티요가를 통해 얻은 내면의 평화, 그리고 스스로를 거대한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그 겸손함이 이들을 오래도록 순수하게 지켜주고 있는게 아닐까.


(참고로 발리에서는 신에게 제물을 바친 뒤, 기혼자는 오른쪽에, 미혼자는 왼쪽에 꽃을 꽂는다. 발리인에게 굳이 결혼 여부에 따라 꽃 방향이 달라지는 이유를 물어보니, 흥미롭게도 미국 여느 파티에서의 이유와 같았다. 결혼한 사람한테는 말을 삼가하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해서! 오른쪽 사진은 양쪽 귀에 꽃을 꽂은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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