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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달리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이유 | Why We Cheer for Runners

발리에서 뉴욕으로의 장장 32시간의 이동을 마치고 돌아온 지 이틀째 되던 날, 5K 레이스에 참가했다. 이 무리한 일정 탓에 며칠째 감기몸살로 앓아누워 있긴 하지만. 나의 2026 첫 레이스. 연습할 때는 항상…

발리에서 뉴욕으로의 장장 32시간의 이동을 마치고 돌아온 지 이틀째 되던 날, 5K 레이스에 참가했다. 이 무리한 일정 탓에 며칠째 감기몸살로 앓아누워 있긴 하지만.

나의 2026 첫 레이스. 연습할 때는 항상 혼자여서 처음에는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과 함께 같은 코스를 달린다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나와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들. 평소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였다면 본 체 만 체 스쳐 지나갔을 군중들이지만, 오늘 이 시간만큼은 같은 목표를 향해 무언가를 공유하며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출발할 때부터 들었던 의문이 있었다.

1. 이 사람들은 왜 달리는 걸까. 주말 아침 일찍부터 굳이 돈을 내면서 달리는 이유말이다. 나는 그저 뛰는 게 내 건강에 좋기도 하고 내년 뉴욕 마라톤을 위해서 뛴다지만, 이렇게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이유로 달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각자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지고 뛰고 있는걸까.
2. 더 이상한건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이다. 이 이른 아침부터 왜 길가에 나와서 낯선 러너들을 응원하는 걸가? 우리를 향해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는 흑인 할머니, 세 아이와 함께 작은 종을 울리며 응원하는 엄마, 개랑 산책을 나와 파이팅을 외쳐주는 아저씨까지. 왜 이토록 진심을 다해 우리를 응원해 주는 걸까.

‘모른다’를 싫어하는 나의 좌뇌는 이 이상하고도 감동적인 풍경을 해석하려 했고, 그날 내가 내린 나름의 해답은 이러하다.

우리는 각자 여러 가면을 쓴 채 세상을 살아간다. 사회적인 동물로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살아가려면 당연히 필요한, 필수적 요소다. 회사에서는 한 명의 팀원으로서, 집에서는 누군가의 딸로서, 혹은 이 뉴욕주에 세금을 내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말이다.

그런데 달릴 때 만큼은 그 껍데기와 가면을 벗어던 질 수 밖에 없다. 원초적인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한 인간으로서의 본질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 자신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고스란히, 그리고 처절하게 드러난다. 아주 간단히는 지금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이겨내고 계속 달리겠다는 굳은 의지부터, 크게는 단순한 육체적 한계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해내고야 말겠다는 내면의 불씨가 선명히 보일 때가 있다. 주변 아픈 누군가를 기억하며 뛴다거나, 올해 안에 9개의 레이스를 완주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들 말이다. 수많은 타인의 꾸밈 없는 솔직함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 레이스 현장이다.

그래서 낯선 러너들을 향해 쏟아내는 그 응원 속에는, 가면 뒤에 숨겨두어 보이지 않았던 각자의 나약한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극복해 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용기에 보내는 진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위해 고통을 이겨내며 달리는 이 레이스, 더 나아가서 삶이라는 길을 같이 달리고 있는 서로를 향한 ‘연대’라는 내적 동기.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당신의 모습을 보니 나도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와 같은 그런 마음들.

요가 지도자 과정을 통해 배운 것 중 하나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가치를 두는 태도이다. 달리는 사람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맺는 연대감 역시 그 보이지 않는 가치 중 하나에 속한다. 당장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기에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과해버리기 쉽다. 나 역시 직접 달려보기 전까지는 ‘도대체 이걸 왜 하는거야?’라고 생각했으니까. 쉽게 말해 당장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행동들 말이다.

하지만 속는 셈치고 한 번, 두 번 직접 하다보면 사람들이 굳이 이 힘든 걸 왜 하는지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평소처럼 각자의 가면을 쓴 채 만났더라면 절대 교류할 수 없었을 그 끈끈한 에너지를 나눈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독적이고 매력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