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인들과의 대화는 항상 이렇게 시작된다. | “Where are you from?” 처음에는 뉴욕이라고 대답했는데 그 때마다 그들은 아니 정말 어디서 왔느냐고 다시 묻는다. 발리인들이 원하는 대답은 한국, 중국, 일본 셋 중 하나인 듯 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I’m Korean”라고 대답했고 대부분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대화가 길어지면 나는 뉴욕에서 살고 있다고 덧붙였고, 그곳은 어떠냐는 질문에는 “뉴욕은 너무 비싸고 발리가 최고다” 라는 식으로 답했다.
뉴욕은 그리 비싸지 않다. | 우붓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쇼핑을 한 날이었다. 요가 지도자 프로그램 졸업식에 입을 옷을 살 생각으로 길거리로 나섰다. 빽빽하게 늘어선 크고 화려한 프렌차이즈 가게들 옆, 작은 구멍가게 같은 곳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여자 사장님은 나의 흥정 요구에 내가 오늘 가게의 첫 손님이라며 흔쾌히 디스카운트를 해주었다.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서려던 차에 갑자기 열대성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었던 나는 가게 안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사장님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대출을 받아 옷가게를 시작했고, 직접 인터넷에서 디자인을 골라 공장에 생산을 맡겨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 12시간씩 일하고 일주일에 쉬는 날은 단 하루. 그렇게 빠듯하게 일해 대출금까지 갚고 나면 매달 수중에 남는 돈은 97달러라고 했다. 아까 신이 나서 가격 흥정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동시에 여행 내내 ‘뉴욕은 비싸다’며 떠들고 다녔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돌이켜보면 사실 뉴욕은 발리에 비해 그리 비싼 곳이 아니었고, 반대로 발리는 현지인들에게 결코 저렴한 곳이 아니었다.

(옷가게 안에서 소나기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찍은 사진)
발리 여자들은 해외로 떠난다. | 돈을 벌기 위해서다. 폴란드 같은 유럽국가는 취업 비자를 받는 데에만 2년이 걸린다고 하니 일단 일하러 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다행이고 감사히 여기는 것 같았다. 비행기에서 내가 만난 두 사람은 각각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와 러시아의 모스크바로 일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둘 중 한 분은 벌써 한 살배기 손주가 있었고, 다른 한 분은 아들만 셋인데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고 자신은 1년에 한 번 발리로 돌아와 가족을 만난다고 했다. 세 아들 중 막내가 일곱 살. 세상에, 일곱 살이면 엄마가 제일 좋을 나이 아닌가.
그분은 내가 만난 발리인들 중에서도 유난히 맑고 순수한 미소를 지닌 분이었다. 나에게 발리 마사지는 어땠냐며 다정하게 웃더니 내 한쪽 손과 팔을 잠시 주물러 주셨다. 이렇게 사랑이 가득한 엄마가 일곱 살짜리 아들을 1년에 단 한 번 밖에 못본다니.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정작 눈물이 나 와주면 좋을텐데 하는 순간들에는 멀쩡하던 내 눈물샘은 집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예상치 못 한 순간에 갑자기 터졌고, 내 눈물에 그녀도 눈물을 닦았다. 나의 눈물이 가족을 두고 일하러 떠나는 엄마의 마음을 더 아리게 한 것 같았다.
이들 외에도 한 달 넘게 발리에서 머물며 많은 현지인들과 만나서 이야기 했다. | 영어, 중국어에 이어 러시아어까지 공부하며 새벽 5시부터 일하는 투어 가이드, 다양한 고객들과 일하며 포트폴리오를 쌓고 있는 소셜미디어 마케터, 딸을 사립학교에 보내기위해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왁싱샵 직원,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다며 대학교수의 길을 버리고 15년째 외국인 손님을 태우는 택시 기사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내 기준에서 제대로 된 복지나 워라밸 없이 일하면서도 타인에게 마음의 여유와 미소를 베풀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발리에서 치마 밑단 수선을 맡긴 적이 있다. 치마를 픽업하러 갔을 때 사장님은 옷을 잘라내고 남은 자투리 천으로 만든 예쁜 스크런치(머리끈)를 내게 선물로 내미셨다. 천 소재가 좋아서 나를 위해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특히 자본주의가 그렇다. 그 틀의 한 조각이 되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가. 대부분의 도시 사람들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이기적으로 변해간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은 무한 경쟁의 사회 속에서 쓸모 없는 일이라 여겨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발리인들의 평화로움이 그저 느긋한 환경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일차원적인 생각이었는지 조금만 자세히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었다. 저렴한 물가, 세상 온화한 날씨, 발리인들의 순수한 미소에 가려진 발리의 진짜 모습은 여느 대도시와 다를 바 없는 생존 투쟁의 현장이었다. 다만 내가 살고 있는 미국과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인도네시아의 불안정한 정치, 경제적 상황 탓에 이들의 노동이 그 가치에 비해 턱없이 낮게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들에게 친절함을 선물로 받고 마음의 평화를 배웠다.
내가 발리에서 받은 따뜻한 호의들을 떠올리며 생각해본다. 나는 얼마나 타인에게 대가 없는 친절을 베풀었었나.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핑계로 다정함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요가 학교 앞 코코넛 가게 사장님 수지. 그녀는 매일 이름 모르는 길거리 개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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