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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노트] 시부야 백화점 딸기와 센비키야의 후르츠 산도, 멜론

아오야마 숙소에 있을 때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시부야를 자주 갔었다. 여행자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시부야에 모여 있는데, 예를 들면 쇼핑, 식당, 지하철, 기차 등이 그렇다. 그날도 건우와 나는…

아오야마 숙소에 있을 때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시부야를 자주 갔었다. 여행자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시부야에 모여 있는데, 예를 들면 쇼핑, 식당, 지하철, 기차 등이 그렇다. 그날도 건우와 나는 시부야 백화점 구경을 갔고, 특별히 식품코너로 향했다. 아기자기하게 생긴 도시락 구경부터 시작해서 싱싱한 채소 코너 등 많은 볼거리에 취해 있던 찰나, 우리의 후각을 자극하는 과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딸기였다.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 아는 지인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는 아주 비싼 과일이 선물용으로 인기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최상급 품질의 과일을 재배할 때는 나무의 영양분이 하나의 열매에만 집중될 수 있도록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하는데 그렇게 자란 열매는 엄청난 가격의 경매에 부쳐지고, 그것이 또 긴자에서 잘 팔린다는 이야기. 그 말을 떠올리며 시부야 백화점에 진열된 향기로운 딸기를 보고 있자니, 이 과일을 꼭 먹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우리 앞에 진열되어 있는 것들 중 제일 비싼 것이 10개 남짓 들어있는 세트가, 내 기억으로 약 70달러 정도였다. 너무 비싸니 그건 패스. 그 다음으로 비싼 딸기가 한 세트에 45달러 정도, 그리고 그 다음이 25달러쯤 되었던 것 같다.

45달러짜리와 25달러, 이렇게 두 종류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 비싼 딸기들을 그냥 먹기에는 아까워서 우리만의 실험을 하기로 했다. 눈을 감고 어떤 딸기가 더 비싼 딸기인지 알아 맞혀보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실험. 그 때 왜 영상을 안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기억을 더듬으며 이 글을 쓴다. 내가 눈을 감고 건우가 딸기를 씻어 준비해서 테이스팅을 도와주었다.

◦ 첫 번째 딸기 — 직관적으로 맛있는 딸기였다. 미국에서 이 정도면 ‘와 맛있다’ 하며 먹었을 맛. 입 안에 딸기향이 은은하게 퍼졌고 달달한 맛도 좋았다. ‘이 느낌을 기억해서 다음 딸기와 비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두 번째 딸기 — 입 안에 넣자마자 딸기향 대폭발. 혀 끝에서 과육이 녹고 풍부한 과즙은 그냥 당.도.폭.행. 수준. 딸기 품안에 포옥 안긴 것만 같은 행복감이었다.

($45 딸기 클로즈업)

‘긴가민가’ 라는 것 자체가 45불 딸기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게 ‘나 최상급 딸기야’ 하고 존재감을 뽐냈다. 솔직히 25불 딸기도 충분히 비싸고 고급인데, 그 딸기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45불 딸기는 독보적으로 달고 맛있었다. 딸기 맛에 흠뻑 빠져 건우와 맛있게 먹고 나니 아담한 숙소 거실은 금세 딸기향으로 가득 찼다.

도쿄에 머무르며 하고 싶었던 몇 안되는 것 중에 하나는 정말 맛있는 일본 음식을 종류별로 먹어보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도쿄에서 누구나 맛있다고 하는 돈까스 맛집에 가서 한 번 먹어보기 같은 것. 그 중 하나가 바로 후르츠 산도였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음식이다. 케이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싫어하기 어려운 음식. 부드러운 빵과 달콤한 생크림 사이에 싱싱한 과일이 들어 있어 보기에도 예쁘다. 하지만 생각보다 맛있기는 어렵다. 조리 방법이나 테크닉보다도 빵, 생크림, 과일 세 가지 재료의 맛이 아주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르츠 산도는 어렵다. 단순한 디저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균형 감각의 집합체다. 일본의 맛있는 우유, 과일에 대한 장인정신, 그리고 기본에 가장 충실해야 훌륭하다는 소금빵을 발명한 국가라는 것을 생각 했을 때 도쿄에서 먹게 될 후르츠 산도가 더욱 기대되었다.

비싼 과일을 쉽게 살 수 있다는 긴자에 도착하자마자 후르츠 산도 가게를 구글맵으로 찾았고, 우연히 눈에 들어온 곳이 1834년에 오픈한 유명한 과일가게 센비키야 (link). 오후 3시반, 애매한 시간이어서인지 약 5분 정도 대기 후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정말 맛있었다. 세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아주 모범적인 맛. 자극적이지 않았다. 대신 오래 남았다. 먹어도 먹어도 계속 맛있다고 느껴지는 맛. 한 입 베어 물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부드러운 빵, 그리고 빵과 과일의 맛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는 신선하고 진한 생크림. 과일들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다. 과일 각각의 향과 맛, 식감이 살아 있었고 한 입 크기로 섬세하게 배치된 조합도 인상 깊었다. 사과를 씹을 때면 아삭하다가도 곧 딸기를 베어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그리고 함께 먹은 머스크 멜론 파르페. 멜론 한 조각을 입에 넣자 부드럽게 녹으며 진한 향을 퍼뜨렸다. 마치 멜론 하나의 과즙과 향을 압축해 그 한 조각에 넣어둔 것처럼. 달콤한 맛은 요즘 기술로 어느 정도 첨가할 수 있겠지만, 과일 본연의 깊은 향은 쉽게 대체 되지 않기 때문에 인상적인 맛이었다. 함께 나온 살짝 시원한 하얀 크림은 멜론의 맛과 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이상 작가가 임종 전에 이 곳 센비키야의 멜론을 찾았다고 한다.

(센비키야의 1층은 과일가게이고 다양한 과일 요리는 2층에서 맛볼 수 있다. 딸기 한 박스가 $211에 판매되고 있다.)

(건우와 나는 센비키야의 황홀한 과일 맛을 잊지 못해 일본을 떠나기 하루 전 이 곳을 다시 찾았다. 이 날은 과일 오마카제 스타일로 모둠 과일 한 접시를 주문했는데 한 입에 먹기 아까워 칼로 썰어 먹은 기억이…)

45불짜리 딸기. 이 향과 맛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선별 작업과 노력이 있었을까. 센비키야의 후르츠 산도와 멜론. 그 맛을 변함없이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세심한 관리가 이어지고 있을까. 누군가의 장인정신을 이렇게 우연히, 아주 가까이에서 오감으로 느꼈던 여행. 그래서 도쿄에서의 기억은 유난히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누구나 먹기 좋은 사이즈의 후르츠 산도. 두 번째 사진은 과일 레이어를 설명해주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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