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도착한 첫날, 시차 적응이 덜 되어 이른 아침 눈을 떴다. 정확한 시각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침 햇살이 막 비추기 시작하던 때였다. 침실 커튼 사이로 학교 건물이 보였다.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은 일본 학교라니. 어릴 적 만화에서 보던 장면들이 떠오르며 마음이 괜히 벅차올랐다. 아, 내가 일본에 왔구나!
아침 7시 반쯤. 간단히 샌드위치라도 사 먹을까 싶어 대충 옷을 입고 숙소를 나섰을 때 뜻밖의 장면을 마주했다. 병아리처럼 작은 어린이들부터 아직 앳된 중학생들까지,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고 등교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머리에 단정히 눌러쓴 버킷모자, 말로만 듣던 란도셀. 초등학생이 교복을 입은 모습은 한국에서도 본 적이 없어서인지 유난히 귀엽게 느껴졌다.

온갖 인종이 뒤섞여 각자의 개성을 뽐내는 뉴욕에 익숙해서였을까. 수많은 아이들이 같은 모습으로 줄지어 걸어가는 그 행렬은 조화로워 보이면서도 낯설었다.
우리가 향하던 샌드위치 가게는 학교의 반대쪽 방향에 있었고, 때문에 아이들과 마주보며 걷느라 본의 아니게 관찰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몇 가지는:
→ 12월 초 아침, 은근히 추운 날씨였는데 남자 아이들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 똑같은 스타일링은 교복 뿐 아니었다. 모두 검은 신발에 하얀 양말을 신고 있었고, 양말의 높이까지 거의 일정했다.
→ 그나마 개성이라고 볼 수 있는 건 가방에 달린 작은 인형이나 장식들. 학생들 모두 비슷한 모습인데, 아주 작은 부분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하고 말하고 있었다.
→ 이 어린이들은 무리지어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 장면이 어쩐지 익숙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세상에. 단 한명도 스마트폰을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명문 초등학교인가, 라는 생각이 스치면서도 어른들의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이 아이들이 새삼 부러웠다.

아오야마 숙소에 머무는 동안 등하교하는 많은 어린이들과 여고생들을 볼 수 있었는데 알고보니 우리가 지낸 곳이 학교로 둘러쌓인 동네였다. 어느 날 아침은 프렌치 토스트 맛집으로 보이는 카페에 들렀는데 (Cha Cafe Do) 우연히도 가쿠인 중학교 옆이었다. 그날은 학생들 대신 학부모들을 보게 되었다.
11시 정각이 되자 약속라도 한 듯 서른명 정도 되는 젊은 엄마들이 우르르 들어와 삼삼오오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넓고 조용하던 카페 매장은 순식간에 엄마들로 가득 찼고, 직원들은 익숙한 듯 빠르게 커피와 차를 내기 시작했다. 그 엄마들도 모두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중단발, 진주귀걸이, 블랙 계통의 단정한 정장, 가죽 핸드백이었다.
각자의 인종과 개성이 뚜렷한 뉴욕에 살다가 도쿄로 여행을 갔을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이었다. 발목으로 올라오는 양말의 높이까지 똑같은 초등학생들. 처음에는 그 풍경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갈 무렵, 다른 일본 여자들과 비슷하게 톤 다운된 옷을 고르고 롱스커트를 찾아 입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인파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나를 보며 낯선 안정감이 같은 것이 느껴졌다.
단정한 교복은 입기 쉽다. 혼자가 아니라는 소속감. 다른 사람들과 한 테두리 안에서 느끼는 유대감. 그러나 나를 자유롭게 하고 확장시키는 것은 단정하지 않은, 조금은 비껴선 나만의 무엇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늘 단정함과 그 반대편 사이 어딘가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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