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rchive of moments and observations

시작이 없다면 영원히 준비되지 않는다

지난 3개월 동안 병가를 내고 회사를 쉬었다. 그 시간은 휴가라기보다는 회복에 가까웠다. 매일 할 일이 많았다. 3개월 뒤 다시 회사에 복귀할 수 있도록 나를 준비시키기 위해서였다. 주말마다 긴 줄을 서야…

지난 3개월 동안 병가를 내고 회사를 쉬었다.

그 시간은 휴가라기보다는 회복에 가까웠다. 매일 할 일이 많았다. 3개월 뒤 다시 회사에 복귀할 수 있도록 나를 준비시키기 위해서였다.

주말마다 긴 줄을 서야 하는 맛집이라든지 직장인들이 없는 평일 오후의 한가로운 맨하탄을 즐겨볼 걸 하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하지만 그 시간동안 나는 꽤 성실했다. 마치 나를 살리기 위해 고용된 직원처럼, 매일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탐구했다.

아침 해가 금세 저녁 노을이 되는 하루들을 반복하며 나는 스스로에게 꾸준히 질문했다. ‘언제쯤 회사에 복귀할 준비가 될까.’ 그리고 그 질문은 마음 한쪽에 오랫동안 자리 잡게 되었다.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에. ‘글쎄, 잘 모르겠네.’ 그렇게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질 즈음, 나는 어느새 출근을 앞두고 있었다.

회사 복귀 하루 전 아침, 생각보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전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늦게 잤는데도 몸이 크게 무겁지 않았다. 그날은 미뤄두었던 일들을 처리하는 날이었다. 병가 이후 처음으로 출근할 때 쓰던 책가방을 챙기고, 우체국에 반송해야 할 물건 두 개도 야무지게 테이프로 포장했다.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 오랜만에 밖에서 혼밥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카페에 들렀다. 집 밖에서 커피를 마신 것도 두 달 만의 일이었다. 평소에 워낙 인기가 많아 늘 붐비는 곳이라 일부러 피하던 카페였는데, 그날따라 자리가 하나 남아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유난히 예뻤다. 이 평일 오후에 내가 이렇게 밖을 돌아다니다니. 개인 작업도, 글쓰기도 하지 않는 어떤 휴가 같은 날이었다.

그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푹 쉬었네. 이제 회사 갈 준비가 되었나’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용기는 가끔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처럼 찾아온다고. 내게 찾아온 그 내면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닫혀있어 먼지가 쌓인 작은 문을 누군가 조용히 열어 준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그 때, 내가 준비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최근에 시어머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신 적이 있다. ‘사람은 준비되어야 할 때 준비된다.’ 그 때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딘가 조금 무책임하게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이 연약하면서도 끈질기게 강한 생명이 내 안에 살아있음을. 그를 통해서 나는 준비 되어야 할 때 준비되는 사람임을.

시작이 없다면 ‘언제 준비되냐’는 질문의 답도 영원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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